점주 야마다 씨의 하루.

 

 야마다는 미카게 시 구도심의 번화가에서 밤마다 야타이를 여는 상인이자 요리사다. 사계절 연중무휴로 장사를 계속하는 그의 일상은 자연스레 규칙적인 형태가 되었다. 가게는 저녁부터 오픈하기에 오전부터 오후까지는 집안일이나 친구와의 약속, 취미 생활(개 산책, 월간 스포츠 잡지 읽기, TV 방송 섭렵하기)을 즐기다 오후 6시가 되면 출근 준비를 한다. 영상 8도. 온도 자체는 견딜만하지만 슬쩍 창으로 손을 내밀어 보니 얕볼 수 없는 칼바람이 불고 있다. 장롱에서 미리 정리해 둔 짧은 패딩과 모자, 목도리를 꺼내어 단단히 착용한 야마다는 집을 나선다. 어째서인지 덩치가 대형견에 가깝게 커다란 시바견 이치로가 당연스레 따라나선다. 처음에는 혹여 사람들이나 차에 치일까 봐 집에 놓고 다녔으나, 끈질기게 따라와 몇 번 데리고 다녔더니 이제는 가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일단 이치로를 귀여워해 주는 손님들이 자주 들르기 시작했다. 취객들이 아무거나 먹이는 것만 막아서면 서로가 외롭지 않아 좋다.

 가게에 도착해 비닐을 젖히고 들어선다. 도구를 청소하고 준비를 마치는 동안 이치로는 좌석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얌전히 지켜본다. 야마다의 가게는 보통 야타이보다 메뉴가 많은 편이다. 그는 도전을 좋아하고 요리 또한 즐긴다. 숯불 구이, 수육, 초무침, 라멘… 그중에서도 특히 꼬치구이 모둠이 그의 솜씨를 뽐낼 수 있는 자신작인데, 가게의 첫 손님이 이 메뉴를 시키면 그날은 장사운이 좋다는 그만의 미신도 있다.

 겨울이라 해가 금방 진다. 아직 7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밤거리의 찬 기운이 첫 손님과 함께 가게 안으로 들이닥친다. 이치로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금세 자리에서 뛰어내려 야마다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사이가 좋아 보이는 여성 두 명이 보인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 어떤 관계일지 괜시리 호기심이 들지만 야마다는 예의를 아는 사람이다. 둘 중 화려한 인상의 아가씨가 주문한다.

 

 “매실주 두 병하고 꼬치구이 모둠이요.”

 

 야마다가 밝은 웃음으로 화답하며 손을 놀린다. 장사 초입부터 운수가 좋다. 그는 먼저 술을 내어주고 재빨리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유에 30분 재워둔 닭고기를 물로 깨끗이 씻고 한 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소금과 후추로 조물조물 버무려 간을 한 후, 대파는 두 마디 크기로 크게 썬다. 식칼이 도마에 닿으며 맑은 타음이 울려 퍼진다.

 

 “주량은 어때요?”

 “모르겠군. 만취할 때까지 마셔본 적이 없어서.”

 “호오… 이참에 보고 싶다고 하면 과한가요?”

 “이런 곳에서는 안 돼. 네 주량은.”

 “집에 초대할걸 그랬다~ 한 병 반 정도인가. 그리고 취하면 좀 웃겨요.”

 “어떻게 웃긴데?”

 

 닭고기와 대파를 번갈아 꼬치에 꽂는다. 다진 마늘, 간장, 올리고당, 생강, 청주를 섞어 양념을 만들고 고루 펴 바른다. 기름을 두른 철판에 꼬치를 두고 앞뒤로 잘 구워주면 노릇노릇하고 짭조름한 야끼토리가 완성된다.

완성되는 대로 손님의 접시에 꼬치를 올려둔다. 갓 구운 꼬치구이는 달착지근한 매실주와의 조합이 기가 막힌다. 그들은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맛에 대해 평할 틈이 없어 보이지만, 요리를 후후 불어 입에 넣은 직후의 표정만으로도 야마다는 알아볼 수 있다. 손님의 만족스런 웃음은 보람 그 자체다.

 

 “울어요.”

 

 뒤이어 표고버섯, 채소 모둠을 따라 굽던 야마다가 흘끔 시선을 흘리곤 제 할 일에 집중한다. 주사가 심한 손님은 응대가 곤란하지만, 옆자리에 잘 대처해 줄 듯한 사람이 앉아 있으니 괜찮으리라 여긴다. 두 사람의 대화를 백색소음 삼아 이제는 새우가 바글바글 튀겨진다. “걱정 말아요. 당신 귀찮게는 안 할 테니.” 잘 웃는 쪽이 손사래를 치자 무뚝뚝한 쪽이 조용히 대꾸한다. “귀찮지는 않은데. 평소에 잘 못 울었나 보지.” 직설적인 대답에 상대방이 할 말을 잃은 듯 남은 술을 단번에 털어 넣는다. 사정을 모르는 야마다가 가볍게 걱정한다. ‘저렇게 마시면 금방 취할 텐데.’ 두 손님은 금방 작은 쪽의 전 애인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리고 전 전 애인도. 말하기를 4명이나 만났다고 한다. 야마다는 이제 40대 후반을 바라보지만 여즉 연애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역시 젊음이 좋아.’ 순수한 감탄이 토핑 된 모둠 꼬치가 모두 내어진다. 군침이 절로 도는 향기에 이치로가 발치에서 헥헥댄다.

 

 “패턴은 늘 비슷해요. 제가 질린다고 그만하자고 말하죠.”

 “그러면?”

 “상대는 화를 내거나 부정하거나… 잡거나, 그것도 아니면 이런 말을 하는 저에게 질려 먼저 떠나죠. 어라, 좀, 개인적이네요. 술 들어가서 이런가 봐.”

 

 고민 상담인 듯 푸념인 듯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제 어린 쪽은 문장을 이을 때마다 한 잔씩 마시기 시작한다. 그들은 사랑을 거론한다. 정확히는 한 쪽이 말하면 다른 쪽이 호응하는 식이다. 그러다 점점 화자의 발음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식탁에는 벌써 술이 세 병 줄 세워져 있다. 이내 그가 울음을 터트리며 식탁에 털퍽 엎드리곤 신세를 한탄한다. 야마다는 느긋하게 조리대 밑의 이치로를 쓰다듬는다. ‘역시 사랑은 잘 모르겠다니까.’




 골동품상 히메시지미 씨의 하루.

 

 “소스 찍어줘요.”

 “자.”

 안 먹을래요. 질려요.”

 “그럼 뭐가 먹고 싶어.”

 “감자튀김이요….”

 

 츠바메가 음식을 받아먹다 못해 훌쩍이며 반찬 투정을 하기 시작한다. 사란은 울음을 터트리고 떼를 쓰는 그를 보고서도 당황하지 않은 채 튀김을 주문한다. 점주 또한 취객을 한두 번 보는 게 아닌지 평온한 태도다. “감자튀김은 없는데, 고구마튀김이라도 드릴까요?” “그렇다는군.” “싫어요… 감자튀기임….”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의견이 확고하다. “슬슬 가는 게 낫겠군. 여기 계산 부탁합니다.” 사란이 츠바메를 부축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머리칼과 분간이 어려울 만큼 어깨까지 새빨개진 그가 코알라처럼 매달려서 쉴 새 없이 말을 잇는다.

 

 “지금 저 귀찮다고 생각했죠!”

 “아니.” 

 “왜요, 저 같은 건 신경도 안 쓰인다 이거예요?”

 “그게 아니라.”

 “됐어요. 비위 맞추려고 그러는 거죠. 미워.”

  “…….”

 

 무어라 대꾸해도 불리해질 거란 예감이 든 사란이 묵묵히 계산서를 주인에게 건넨다. 츠바메는 그가 입을 다물어버린 게 서운해서 운다. “제가 계산할 거라니까요! 어라, 지갑을 어디다 뒀더라….” 품을 뒤지는 새에 이미 지불이 끝난다. 그러자 츠바메는 대단히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듯 다시 와앙 울어버린다.

 두 사람이 가게를 나서려 하자 조리대 뒤에서 무언가가 뛰어나온다. 시바견을 그대로 확대시킨 모습의 큰 개다. 

 

 “어머, 언제부터 강아지가 숨어 있었지?”

 

 츠바메가 개를 끌어안고 무언가 푸념하며 계속 운다. “그때 엄마가 내가 열심히 모은 화장품 세트를 갖다 버려서….” 개가 싫어하기는커녕 꼬리를 붕붕 돌리자 그가 잠시 울음을 멈추고 기특하다며 부숭한 털에 뽀뽀한다. 개의 얼굴에 립스틱 자국이 번지자 주인이 웃으며 박수 친다. 

 

 “이치로, 너 화장도 잘 어울리잖냐.”

 “죄송합니다. 츠바메, 가자.”

 “조금만 더요~ 푹신하고 따뜻해~”

 “이불이 더 푹신하고 따뜻할걸.”

 

 사란이 츠바메를 번쩍 들어 일으킨다. 츠바메는 이치로와의 이별이 연인과의 마지막 만남이라도 되는 마냥 슬퍼하며 지치지도 않고 앵알댄다. 부축한 사란에 의해 얼굴이 휴지로 훔쳐지며 그제야 가게를 나선다.

 

 “또 오십쇼!” 

 

 바깥바람이 올 때보다 훨씬 차가워 열기를 빠르게 식힌다. 사란이 핸드폰으로 택시를 부르자 츠바메가 팔을 붙잡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 “자고 갈래요?” 그가 잠시 눈짓하더니 대답도 없이 시선을 돌린다. 

 

 “저 무시하는 거예요?!”

 “어차피 농담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좀 어울려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쌀쌀맞아. 재미없어. 츠바메는 투덜거리며 슬슬 울음을 그친다. 훌쩍이는 그를 보곤 사란이 옷의 목깃 부근을 동여 매주며 말한다.

 

 “집까진 데려다주마.”

 “어디 가서 제가 울었다는 말 하면 안 돼요.”

 “안 할게.”

 “약속해요.”

 “약속하지.”

 

 츠바메는 생각한다. 그는 입이 무거운 사람이니 약속을 지키겠지. 히메시지미 부대의 대장이 술 먹고 길거리에서 꼬장을 부렸다더라, 같은 얼굴도 못 들 소문은 퍼지지 않을 거다. 그런데 왜인지 그게 또 거슬린다. 부탁은 다 들어주고 거절하는 법이 없으면서 부담스러워하지도 않고, 심지어 누구에게나 비슷한 태도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둘째치고 괘씸하다.

 

 “왜 또 울어.”

 “몰라요.”

 

 사란이 더 묻지 않고 내내 그의 얼굴을 닦아준다. 택시에 탄 이후로는 조용하다. 가게 주인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일면식 없는 택시 기사 앞에서까지 무너진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사실 그렇게까지 체면을 차릴 이성이 남아있던 건 아니지만, 최소한의 본능이었나 보다. 그냥 피곤했던 걸수도 있고. 오피스텔 앞까지 부축받은 츠바메가 이제 괜찮다는 걸 보여주듯 허리를 꼿꼿이 편다. 물론 사란에게는 구부정하게 보인다.

 

 “미안해요, 여기까지 어울리게 하고.”

 “온 김에 구경이나 한 번 하고 가지.”

 “네? 왜요?”

 “궁금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니 구태여 할 말이 없어져서, 츠바메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현관문을 연다. ‘나도 참,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보더 대원 운자 씨의 하루.

 

 집에 대한 첫 감상은 이렇다. 과연 그 다운 모양새다. 무어라 표현하기 어렵지만 느낌이 그렇다. 복도에는 이름 모를 회화 작품들이 걸려 있고, 그 너머로는 옷가지나 책들이 누가 일부러 엎어둔 것처럼 묘한 균형을 이루며 놓아져 있다. 어지럽지만 이상하게 더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에 나오는 세트장처럼 꾸며두었다는 인상이다. 츠바메는 취한 몸을 힘겹게 가누고, 흩어진 잡동사니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소파로 직진해 그대로 널브러진다. 사란은 따라서 짐들을 건드리지 않게 조심히 복도를 나아간다.

 

 “츠바메. 들어가서 자라.”

 “여기가 편해요.”

 

 주방 쪽을 바라보자 묘하게 차분한 분위기다. 식재료나 쓰레기는 전혀 보이지 않고 도구들도 모두 제자리에 꽂혀 있다. 애초에 주방을 잘 쓰지 않나 보다. 해장용으로 뭐라도 만들어주려 뒤져보았지만 냉장고에 쓸만한 재료도 없다. 그가 다시 소파로 돌아와 츠바메를 안아든다.

 

 “괜찮다니까요.”

 

 말과는 달리 얌전하다. 그뿐만 아니라 목에 손을 감아와 내려다보니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다. 필시 그가 인사불성이 되면 어떻게든 챙겨주던 애인들이 있었던 거겠지. ‘버릇이 무섭군.’ 사란은 그를 집까지 데려다주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방 안으로 데려가 침대에 눕히려 했지만 위에 무성의하게 널린 옷가지가 너무 많다. 바깥에도 옷이 있던데, 대체 몇 벌이나 가지고 있는 걸까. 의문을 뒤로한 채 츠바메를 가장자리에 앉히고 급한 대로 옷을 그러모아 의자에 걸쳐 둔다. 하는 김에 츠바메의 겉옷이나 양말도 벗기지만 여전히 조용하다. 이미 반쯤 잠든 상태인가 보다. 가벼이 정리된 침대 위에 그를 눕힌다. 감은 손이 잘 풀리지 않아 떼어냈더니 불만스런 소릴 낸다. 오는 길에 숙취해소제를 사 먹였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출근도 어려울 뻔했다. 밀어두었던 옷가지를 다시 주워 담아 옷장에 차근차근 걸어 둔다.

 

 “잘 자.”

 

 슬슬 볼일이 끝나 마지막으로 츠바메의 상태를 살피려다 어느샌가 눈을 뜬 그와 시선이 맞닿는다. 그가 눈을 접어 웃는다.

 

 “이래서 당신이 좋다니까….”

 

 또, 말과는 달리 팔을 들어 사란을 밀어낸다. 그는 버티지 않고 그대로 밀려 몸을 일으킨다. 문을 반만 닫으며 방을 나선다. ‘내일 볼만하겠어.’




 보더 대원 히메시지미 씨와 운자 씨의 하루.

 

 운자 부대의 부대실 앞에서 츠바메가 도라야끼 한 상자를 내민다. 명백히 부끄러워하는 낯이다. 어제 일이 모두 기억 나나 보다. ‘필름이 끊기는 타입은 아닌가 보군.’

 

 “어제 고마웠어요. 이건 부대실에 두세요.”

 “속은 괜찮고?”

 “네에, 덕분에요.”

 “그럼 감자튀김 먹으러 갈까.”

 “아이, 정말!”

 

 사란이 진지한 얼굴로 농담을 던지자 츠바메가 가볍게 비명을 지른다. ‘놀리는 거지, 이거?!’ 그러자 그는 물러서지 않고 대꾸한다.

 

 “다음엔 네가 사는 건가.”

 “이젠 진짜 쪽팔리거든요?!”

 

 츠바메가 취하지도 않았는데 얼굴을 붉힌다. 그는 귀와 이마부터 빨개진다는 걸 사란은 어젯밤 깨달았다. 놀리는 건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하고 그가 도라야끼를 받아든다. 저 멀리서 히코와 신이 다가온다. 사란은 태연히 오는 길에 마주쳤나 보다 생각하지만 혹시나 두 사람이 자초지종을 물어올까 겁이 난 츠바메가 황급히 말을 잇는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뛰다 넘어지지 말고.”

 “누가 앤 줄 알아요?”

 

 과연 뛰다 넘어지진 않는다. 그는 구두를 신고서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빠른 걸음으로 인파를 빠져나간다. 순식간에 거리가 멀어진다. 두 사람이 생각한다.

 

 ‘도망치는 데엔 선수군.’

 ‘나 지금도 빨개진 거 아니겠지?’